고가의 EUV 도입이 새로운 경쟁력이 될까?

[테크월드=양대규 기자] 미국에서 시작된 반도체 시장은 1980년대 일본으로 주도권이 넘어갔다. 1990년대부터는 인텔(Intel)의 독주가 시작됐으며, 한국 기업들이 반도체 시장에 두각을 보였다. 이후 메모리 시장을 주도한 삼성전자는 21세기에 접어들며, 인텔의 뒤를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2017년 메모리 시장의 급격한 성장과 함께 인텔을 꺾고, 반도체 산업의 1위를 기록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은 앞으로도 삼성전자가 반도체 시장에서 주도권을 놓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7nm 이하의 공정에 꼭 필요한 EUV(Extreme Ultraviolet, 극자외선) 장비를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했기 때문이다. 반면, 인텔의 경우에는 최근 EUV를 2021년 이후 도입하겠다고 밝히며 삼성과의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EUV 장비(자료: ASML)

기술력이 선도하는 20세기 반도체 시장

1947년 미국 벨연구소에 최초의 트랜지스터가 발명된 이후, 반도체 산업 초창기 세계 반도체 시장을 선도했던 것은 인텔, 텍사스인스트루먼트(Texas Instruments, TI) 등의 미국 기업들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NEC, 도시바, 히타치 등 일본 기업들의 추격이 시작됐다. 당시 인텔은 일본의 약진에 DRAM 개발과 생산을 포기하고, CPU 생산으로 돌아섰다. 이후 1990년대 초반까지 반도체 매출 10위권 내의 절반 이상이 일본 기업으로 채워졌다. 업계 관계자들은 일본 특유의 ‘장인 정신’이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당시 일본은 전 세계에서 제일 좋은 성능의 제품을 만들겠다며, 반도체 기술 개발에 대해 높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1980년 DRAM 가격은 1MB 당 6480달러로 최근 9달러에 거래되는 8GB DRAM과 비교하면 무려 74만 배 가량의 가격:성능 차이가 났다. 이런 고부가가치 시장에 일본의 장인 정신은 그야말로 딱 맞는 옷이었다.

한국의 반도체는 1983년 삼성이 64KB DRAM 개발을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당시 선진국들과는 4년의 기술 격차가 있었다. 당시 국내 기업의 반도체 진출에 대해 일본 기업인 도시바는 ‘곧 망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1990년 선진국과 비슷한 시기에 16MB DRAM을 개발했으며, 2년 후인 1992년 세계 최초로 64MB DRAM을 개발했다. 기술력으로 1위를 차지한 삼성전자는 퍼스트 무버 어드밴티지(First Mover Advantage)의 이점을 십분 활용했다. 1993년 삼성전자는 256MB DRAM 개발을 시작했으며, 1996년 세계 최초로 1GB DRAM 개발을 성공하며 한국 반도체 기술력이 세계 최고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특히 삼성전자는 퍼스트 무버로 신규 설비에 먼저 투자해 비용을 절감하며 이익을 실현시켰다. 기술 결함 발생 등의 이유로 장비 업체들은 초기 구매자에게 할인을 해주기 때문이다. 또한, 최초의 생산 제품에 대해 직접 가격을 결정할 수 있어 높은 마진을 달성했다. 이런 전략으로 삼성은 1990년대 후반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1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메모리 기술의 ‘표준 확립’, 기술력보다 중요한 생산성

1997년 국제 반도체 공학 표준 협의기구 JEDEC(Joint Electron Device Engineering Council)가 DDR(Double Data Rate) 기술을 표준으로 채택하며,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판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JEDEC는 '원 사이즈 핏츠 올(One Size Fits All)'이라는 구호로 많은 업체가 공정하게 사용할 수 있는 특허로 표준화를 진행하는 기구였다. JEDEC의 표준화로 생산 업체가 많아지면서, DRAM의 단가가 크게 떨어지게 됐다. 반도체 업계의 경쟁력이 기술력에서 생산성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2000년대부터 진행된 글로벌 ‘치킨 게임’으로 DRAM 시장은 2007년부터 심각한 공급과잉 상태를 일으켰다. 이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와 맞물려 전 세계 반도체 수요의 하락으로 이어져, 반도체 가격이 원가 이하로 떨어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삼성전자는 대량생산을 통한 원가 절감으로 손실을 극복할 수 있었으나 다른 글로벌 기업들은 적자를 피할 수 없었다. 결국 2019년 1월 인피니언의 DRAM 생산 자회사 키몬다(Qimonda)가 파산 신청을 하며, 유럽의 메모리 회사는 전멸했다. 2012년에는 미쓰비시, NEC, 히타치가 합쳐 만든 세계 3위 DRAM 제조회사였던 일본의 엘피다를 포함해, 대만의 프로모스와 파워칩 등이 파산을 하며, DRAM 시장은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의 마이크론만 남게 됐다.

3개의 기업만 남은 DRAM 시장은 스마트폰 보급으로 인한 모바일 메모리 반도체 수요의 증가와 함께, 역으로 수요가 공급을 압도하는 시장으로 바뀌었다. 이에 DRAM 3사는 모두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반도체 전문 시장조사기관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2018년 상반기 반도체 사업에서 397억 85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는 2017년 같은 기간보다 36% 증가한 수준으로 반도체 산업 매출 1위를 차지했다. 25년간 반도체 1위를 지켜오다 2017년 삼성전자에 1위를 내준 인텔은 13% 증가한 325억 8500만 달러를 기록하며 2위를 유지했다. 이어 SK하이닉스가 3위, 대만의 파운드리 전문업체 TSMC가 4위를 기록했다. 특히 SK하이닉스는 매출이 56%나 증가하며, 반도체 매출 상위 15개 기업 중에서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EUV를 이용한 7nm 이하, ‘미세 공정’의 시대

최근 반도체 시장은 미세공정 기술 확보가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반도체 회로의 선폭 크기를 작게 할수록 똑같은 크기의 웨이퍼에서 더 많은 반도체를 만들 수 있어, 생산성은 높아지고 가격은 저렴해진다. 또한 비슷한 성능이라도 전력 효율을 크게 향상할 수 있어 고성능, 저전력의 최근 반도체 시장 트렌드에 적합하다. 이런 이유로 미세공정이 반도체 산업의 새로운 경쟁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 반도체 업계는 10nm 공정에서 7nm 공정 시대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7nm 공정을 위해 필수적인 장비가 EUV 노광 장비다. 노광은 웨이퍼에 빛으로 회로를 그리는 포토 리소그래피(Photo Lithography) 기술이다. 현재 10나노대 공정에는 193nm 파장의 불화아르곤(ArF) 광원을 이용해 회로를 그린다. ArF 광원의 경우 미세한 회로를 그리기 위해서는 추가 공정 단계가 늘어나 생산성이 급격히 떨어지게 된다는 단점이 있다.

EUV는 13.5nm로 ArF 광원에 비해 파장이 1/10 수준으로 짧아 더 세밀하게 회로를 그릴 수 있다. 삼성전자는 7nm 공정부터는 EUV 노광 장비 도입이 필수라고 판단해, 지난 2018년 2월 화성 캠퍼스에서 EUV 전용 공장을 착공했다. 60억 달러(6조 7000억 원)의 초기 투자금이 투입된 삼성전자 화성 EUV 공장은 2019년 완공, 시험생산을 거쳐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가동된다. 삼성전자는 EUV 도입으로 2018년 7nm 공정 개발을 완료하고, 2020년 4nm 공정까지 기술을 고도화한다는 계획이다.

EUV 노광 장비는 대당 1500억~2000억 원에 달하는 고가의 장비다. 삼성전자는 화성 EUV 공장에 투입하기 위해 10대 이상의 EUV 노광 장비를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비 구매 비용만 1조 5000억 원에서 2조 원에 이른 셈이다.

(자료: 삼성전자)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1위 업체인 대만 TSMC는 7nm 공정까지는 기존 ArF 기반으로 해결하고, 5nm 공정부터 EUV 노광 장비를 도입할 계획이다. TSMC는 검증된 ArF 노광 기술이 더 낫다고 판단하고, 더블(DPT)이나 쿼드러플패터닝(QPT)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를 통해 2017년 TSMC는 삼성보다 빠른 7nm 공정 시험 양산에 성공해, 2018년 2분기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추고 제품을 독점 양산 중이다. 현재 TSMC는 화웨이와 애플에 7nm 공정 제품을 제공하고 있다. 화웨이가 2018년 9월초 공개한 기린 980과 애플이 9월 12일 발표한 아이폰Xs 시리즈에 TSMC의 7nm 공정으로 제조한 칩세트가 탑재됐다. 애플은 지난 2015년까지 TSMC와 삼성전자에서 아이폰용 AP를 절반씩 양산했으나 이듬해부터 전량을 TSMC에 맡겼다.

TSMC는 올해 7나노 공정 제품을 채택한 고객사 기기가 50개를 넘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7나노 반도체는 기존 10나노 대비 전력 소모가 낮고 성능이 개선된 제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내년 삼성전자가 양산을 시작하기 전까지 TSMC가 시장을 독점하게 된다. TSMC는 이와 함께 EUV 공정 도입도 준비해, 2019년부터 EUV를 도입할 것으로 계획하고 있다.

한편, 최근 글로벌 최대 시스템 반도체 기업인 인텔은 10nm 이하 미세 공정을 위한 신공정 도입을 2021년까지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인텔이 EUV 도입 연기 이유에 대해서는 현재 불분명하다. 업계에서는 인텔이 10nm 공정 전환에 어려움을 겪으며, 앞서 구상한 미세공정 포트폴리오의 타임라인 자체가 무너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현재 인텔은 10nm 공정 개발의 기술적인 난제를 극복하지 못해 양산을 2019년으로 미루며 차기 공정 개발에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회사 번스타인의 마크 리(Mark Li) 애널리스트는 "이미 경로를 벗어난 인텔이 2021년까지 7nm 노드 EUV 공정 도입을 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인텔은 글로벌 반도체 제조사 가운데 처음으로 EUV 개발에 뛰어든 업체로 2000년 EUV 로드맵 발표 당시 “2004년 전후로 EUV 도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까지 로드맵을 여러 차례 수정하며, 인텔의 EUV 공정 도입의 미래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7월 27일 경기도 이천에 3조 5000억 원을 투입해 M16 신공장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SK하이닉스는 이천 공장에 EUV 노광 장비 전용 공간을 마련할 계획이다. SK하이닉스에 따르면, EUV 노광 장비 반입을 고려해 M16 공장이 기존 공장보다 투자비가 늘었다. 공장은 2020년 10월 완공이 목표다.

EUV 노광 장비는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반도체 장비 업체 ASML이 유일하게 생산한다. ASML은 2000년대 들어 삼성전자, 인텔 등의 지원을 받아 EUV 노광 장비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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