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라 IT 비즈니스 센터, 나오이 요시로 부소장 인터뷰


[테크월드=박지성 기자] 사무라이의 나라, 일본. 1870년대 이후 사무라이는 모두 사라졌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은 사무라이를 일본을 상징하는 단어로 꼽는다. 

일본의 IT 산업도 마찬가지다. 비록 오랜 침체기를 겪고 있지만, 워크맨으로 대변되는 일본의 IT 산업은 전 세계에 선명한 기억을 남겼다. 그리고 우리는 꽤 오랜 시간 그 일본의 등을 보며 줄기차게 달려왔다. 그리고 마침내 다 따라잡았다고 느끼는 순간, 국내 IT 산업의 성장 엔진이 꺼졌다는 심각한 우려가 대두되고 있다. 일본의 부침(浮沈)이 국내에 줄 수 있는 시사점을 찾기 위해 본지는 도쿄로 향했다.

일본 도쿄도 치요다구에 위치한 카스미가세키는 에도시대부터 다이묘들의 저택이 즐비한 번화가였고 지금도 일본 정/재계의 심장이라 불리운다. 지명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명함이 된다는 그 곳에서 코트라 도쿄 IT 비즈니스 센터의 나오이 요시로 부소장을 만났다.  

 

KOTRA IT 비즈니스 센터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부탁한다.

코트라 도쿄 IT 비즈니스 센터는 최초 정보통신부 산하의 소프트웨어 진흥원 해외 기관으로 출발하였다. 이후 MB 정부의 정통부 해체 이후, 코트라 산하로 재편됐고 주로 한국 IT 기업들의 일본 진출을 지원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일본 시장 현황에 대한 분석 활동은 물론, 1년에 1~2번 스마트 코리아 포럼 등을 개최하고 연 5~6회 자체 세미나를 여는 등 다방면의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일본 IT 시장 침체의 골이 상당히 깊었다. 최근 아베노믹스를 통해 이 침체기를 벗어나 일본 IT 산업이 다시금 기지개를 피고 있다는 의견이 많다. 

언론의 평가와 현장의 공기는 다르다. 현장에서 느끼기에는 아직도 멀었다. 물론 과거에 비해 회복세인 것은 맞으나, 아직 침체를 ‘극복’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IDC 보고서를 봐도 ‘16년 일본 전체 IT 산업은 0.2% 성장했을 뿐이다. HW는 -3.1%의 역성장을 기록했고, IT 서비스 등 SW 측면에서는 2.1%의 소폭 성장을 기록했다. 

리먼 사태 이후 오랜 기간 역성장을 지속하다 보니 과거와 비교해 나아졌다는 것 일뿐 이 수치를 가지고 침체기를 벗어났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 샤프는 대만에 인수됐고, 도시바도 긍정적 전망을 장담하기 어렵고 히타치도 구조조정이 성공했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구조조정의 성공도 사실 IT 중심의 턴어라운드라기 보다는 인프라 사업이 성과 개선을 견인했다. 일본 IT 산업의가장 높은 성장률 기대치가  ‘19년, 2%대 초반임을 가정하면, 환자가 중환자 실에서 나와 일반 병동으로 갔다는 표현 정도가 정확하지 않을까 싶다. 

 

모든 기업들의 가장 큰 고민은 바로 “성장”이다. 최근 일본의 IT 기업들은 어떤 영역에서 성장 동력을 찾으며 혁신을 꾀하고 있는가?

냉정하게 이야기 하겠다. 아직 대부분 못 찾고 있다. (웃음) 

일본도 사실 한국과 대동소이하다. 아베 총리의 일본 재흥전략이 매년 발표되는데, 4차 산업혁명을 현실화 한다는 목표 아래 IoT/AI/빅데이터/로봇을 중심으로 성장 계획을 수립했다. 근데 과연 이게 성장동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적어도 성장동력이라 함은 남이 하지 않는 영역에 진출을 하거나 혹은 다같이 진출한 영역에서 압도적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관점에서, 여전히 많은 일본 기업들이 모두가 유망하다고 하는 영역에 동일하게 진출하고 있을 뿐이다. 더불어 IoT도 AI도 아직은 현실적 비즈니스가 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아직 성장동력이 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4차 산업혁명은 성장 잠재력이 없는 키워드라는 것인가?

4차 산업혁명이 성장 동력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과 같이 모두가 천편일률적으로 시장에 진입하는 방식으로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모두가 AI/Big Data/IoT를 이야기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4차 산업혁명의 기본 골조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 새로운 테크놀로지들의 근본적 경쟁력은 어디서 오는가? 바로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구축하는 것이다. 이 것이 핵심이다.

그렇다면 이 데이터는 어디에서 확보할까? 바로 센서다. 센서는 IoT처럼 멀리 있지 않다. 매우 실질적이고 실상에서 늘 봐왔던 제품이다. 하지만 이런 제품의 경쟁력이 곧 4차 산업혁명의 실체다. 최근 알프스전자는 범용 IoT 센서를 시중에 9천8백엔에 출시하며 멀리 있는 IoT가 아닌 실생활 속의 IoT를 도입하려 하고 있다. 교세라, 무라타 제작소, 일본 전산 등은 여전히 일본이 자랑하는 IT 업체들이다. 소니가 무너지고, 도시바가 넘어졌고, 샤프는 스러졌다. 그러나 앞서 말한 이 기업들은 버텼다. 일본 IT산업의 저력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트렌드는 시간이 지나면 변한다. 그러나 기반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건해진다. 4차 산업혁명도 결국은 '산업'이다. 산업의 근본적 역량 없이 4차 산업혁명에서 무언가를 얻겠다는 것은 모순이다.

나오이 요시로 코트라 IT 비즈니스 센터 부소장

한국 기업들은 오랜 시간 일본을 추격하며 성장했다. 그러나 요즘은 오히려 후발주자인 중국 기업에게 그 입지를 위협받고 있다. 힌국의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 노력을 해왔던 일본 기업들에게 국내 기업이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이 있다면? 

한국 기업들에게 '샌드위치'이론은 매우 익숙하다. 기술의 일본, 원가의 중국 그리고 그 가운데 한국이라는 개념, 개인적으로는 그 '샌드위치' 이제 좀 질릴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웃음)

2011년 일본 휴대폰 시장에서 삼성의 갤럭시는 시장 점유율 28.5%를 차지하며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2위 사업자보다도 3배 가까운 격차였다. 지금 일본 기업들은 한국 기업이 일본을 추격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본 기업과 동등한 선 혹은 그 앞에 있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샌드위치 이론에 대한 시각 탈피가 있어야 새로운 전략을 세울 수 있다. 갇혀 있는 시각은 갇혀있는 전략을 낳고 이는 혁신적 발전이 아니라 점진적 개선에 그칠 뿐이다. 어찌 보면 샤프 등 일본 기업들도 지금 한국 기업과 유사한 실수를 저질렀던 것 같다. 한국 기업들의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그 추격을 따돌리는데 집중하다 보니 기존의 동일한 경쟁 방식과 패러다임에 갇히게 됐다. 휴대폰-디스플레이-반도체 등 전 영역에서 일본 기업들은 새로운 게임의 룰 (Rule of Game)을 제시하지 못했고 오히려 한국 기업과의 승부에서 오히려 뒤쳐져 버리고 말았다.

경쟁전략에 천착됐던 완성품 중심의 일본 IT기업들이 몰락했던 반면 앞서 언급한 모노즈쿠리(ものづくり:장인정신)기반의 소재/부품 기업들은 경쟁자의 추격을 의식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기만의 방식을 고수한 결과 지속성장을 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시사점 아닐까. 

 

일본 진출을 검토하는 한국 기업들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혹은 유념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경영의 호흡의 차이가 두드러진다. 한국에서는 단거리 전력 질주 방식이 통한다면 일본에서는 장거리 마라톤 방식이 주효하다. 채점 방식을 예를 들면, 한국 기업들은 0점에서 시작해서 장점이 있을 경우, 100점으로 양의 점수를 쌓아가는 방식이라면 일본 기업들은 100점에서 시작해 단점이 발생할 경우 0점으로 차감해 나가는 방식이다. 

한국 기업이 홈런 타자가 되기를 원하는 반면, 일본 기업들은 번트를 할지언정, 꾸준히 출루하는 타자를 원한다. 그래서 많은 한국 기업들이 자신들의 제품/서비스에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일본 시장에 진출하지만, 단기간 내에 성과를 거두려고 하고 이게 신통치 않은 경우 철수하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호흡의 길이가 다르다. 정말 자신 있는 제품이고 서비스라면 일본 시장에서 분명히 통한다. 다만 문화적 차이로 인해 그 성과가 나올 때까지 상대적으로 긴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다. 일본에서는 그 성공을 위한 시간을 감내해 낼 수 있는가 역시 중요한 품질 기준 중의 하나다.

 

최근 한국 IT 산업의 성장 엔진이 꺼졌다는 우려감이 팽배하다. 한국과 일본의 IT 산업을 오랜 시간 지켜봐 온 관점에서 국내 기업들에 조언을 해준다면? 

일본은 내수가 크고, 한국은 내수가 작아서 한국기업들은 성장에 한계가 많다고들 한다. 그러나 그게 기업의 경쟁력을 제한하는 근본적 요인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시장이 크다고 모든 기업이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장을 바라보는 외부적 시선을, 자신의 역량을 바라보는 내부적 시선으로 바꿔야 한다. 일본에는 샤프, 파나소닉, 소니가 아니어도 아직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강소기업들이 많다. 일본 기업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역량에 대해, 모노즈쿠리 관점에서 정말 많은 고민을 한다. 그리고 그 강점에 기반한 사업 확장과 강화를 통해 강소기업으로 영속하게 된다. 

인쇄 기업이 IT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일본의 유명한 인쇄 회사인 다이니혼 인쇄를 보자. 다이니혼은 오랜 기간 동안 제지 인쇄 분야에 강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종이 기반 사업의 위기가 찾아오자, 자신들이 진정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다수의 출판 경험을 통해, 컨텐츠가 어떻게 하면 독자들에게 더 돋보이게 전달될 수 있는지를 알고 있었고, 미묘한 종이질의 성격을 감안해 섬세한 인쇄를 할 수 있는 역량이 있었다. 종이의 시대는 사라지고 있었지만, 그들의 역량을 어디선가는 여전히 필요로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강점을 기반으로 웹 상의 CMS(Contents Management System: 컨텐츠 매니지먼트 시스템) 사업 그리고 반도체 포토마스크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해 나갔고, 지금은 다이니혼 인쇄라는 사명이 어색할 정도로 많은 IT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지금도 코트라에서 개최하는 세미나에 다이니혼 인쇄는 주요 방문객 중 하나이다.

사실 예전에 비해 소위 재미있는 한국 IT 기업들이 많이 없어졌다. 네이버와 삼성 같은 초대형 기업들이 독점적 지위를 누리게 되면서 이런 현상이 급속하게 진행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한국 기업가들은 “강소기업”의 토양을 원한다. 이런 기업들이 생착하기 위한 제도적 토양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강소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 강함이 있어야 한다. 그게 우선이다. 히타치 등 최근 일본 IT 기업들 구조조정의 첫 질문은 “우리는 과연 무엇을 잘하는 기업인가?”이다. 

성장엔진은 꺼지지 않았다. 그 성장엔진이 꺼졌다면 어떻게 지금의 한국 기업들이 있겠는가? 자신들의 진정한 강점이 무엇인지, 그 강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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